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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계뉴스] [최성민 칼럼] 희생으로 다져진 눈물의 섬, 하와이 미주교회신보2024.08.02
    [2024견미단 '리틀 이승만' 견미단원 최성민][하와이 진주만기념공원][2024견미단 하와이 진주만기념공원 단원들과 함께][하와이 한인 칼라하 묘지 2024견미단원들과 함께]  미국 하와이 역사 탐방 3일차를 맞이하였다. 조식을 먹기 전에 하와이의 거리들을 보고 싶어서 조원과 같이 산책을 하였다. 길거리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으나 많은 차량들이 통행을 하고 있었다. 숙소 근처에 있는 ‘Ala Moana Regional Park’해변으로 이동하였는데 정말 아름다웠다.오른쪽에는 고운 모래와 아름답게 지은 빌딩이 우리를 반겼고 왼편으로는 나무들과 새들이 반겼다. 다 해변으로 모였는지 많은 사람들이 수영을 하거나 스탠딩 패들보드를 타고 있었다. 우리는 숙소에 돌아와 다음 일정인 ‘진주만기념공원’으로 이동했다.이동하는 동안 창밖으로 하와이의 모습들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조깅을 하는 사람이거나 홈리스들이 대부분 이였고 걸어서 이동하는 사람들은 거의 볼 수 없었다. 하와이가 화산섬이라 그런지 고속도로에 접어드니 왼쪽에는 산과 산 중턱에 지어진 주택들이 보였고, 오른쪽에는 항구와 해변, 그리고 드넓은 바다가 보였다.‘Pearl Harbor National Memorial’(진주만 국립 기념관)은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희생을 당한 미군과 12척의 함선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유적지이다. 당시 가장 많은 승조원이 숨진 애리조나 호가 바다에 가라앉은 그대로 남아있으며 1945년 9월 2일 일본군이 항복 문서에 서명한 미주리호도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특히 우남 이승만 대통령은 진주만 공습 6개월 전에 일본이 미국을 공격한다는 책 <일본 내막기(Japan Inside Out)>을 출판한 바 있다.공원은 생각보다 넓었고 다 구경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여 바로 애리조나호가 가라앉아 있는 ‘USS Arizona Memorial’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섰다. 이곳에는 현역 경찰과 군인들이 공원을 지키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배를 타고 5분정도 이동하였는데 중간 중간에 현역으로 운용되어지고 있는 군함들이 항구에 대기 중이었다.이곳은 일반적인 공원이 아니라 미군 군사시설구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눈으로 많이 보고 기억에 담았다. 돌아오는 길에 퇴역한 미주리호와 USS 보우핀 잠수함을 멀리서 볼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매우 컸다.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무기들을 만들었는지 신기했다.견학 후 어제 점심을 해결했던 ‘Waterfront Park’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늘도 뜨겁고 강한 강풍이 불기 시작했다.우리나라 공원은 비둘기나 참새가 많이 보이는데 이곳은 특이하게도 앵무새와 닭과 병아리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작은 크기도 아니고 건강하게 생긴 닭이 울면서 돌아다니는데 잡아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들 중에 ‘앵그리버드’라는 게임 속 캐릭터들의 모습과 흡사하게 생긴 새를 많이 발견하여 눈과 입이 즐거운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다음 일정으로 초기 한인들의 묘지가 모여 있는 칼라하 묘지에 방문하였다. 우리 일행은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분들에게 감사의 헌화를 하였다. 최근에 발견되어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채 묘비가 넘어지고 글씨도 지워져있는 것도 보여 너무나 죄송했다.공동묘지를 나와 다이아몬드 헤드산 등반을 하였다. 이곳의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해 산책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분화구 정상까지 올라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으나 뜨거운 날씨에 조금 움직였는데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고 갈증이 심해졌다.그러나 조원들과 함께 즐겁게 올라가니 분화구 정상에 도착하였고 정상에서 보는 풍경은 잊을 수 없었다. 호놀룰루의 전경이 다 보였고 태평양의 깊은 바다도 보였으며 그림 같은 구름들도 볼 수 있었다. 사진을 아무리 예쁘게 찍으려고 해도 담을 수가 없었다.그러다가 문득 군복무를 하였던 백령도가 생각났다. 백령도에서 제일 높은 곳이 군사시설이면서 또한 나의 등반코스였는데 이곳과 비슷한 전경에 옛 기억을 떠올랐다.산을 내려가는 길에는 다른 조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마침 같은 백령도에서 군복무한 선임을 만나서 무척 반가웠다. 저녁 식사는 ‘서라벌’에서 김치찌개가 제공되었다. 오랜만에 국물이 들어가고 김치가 들어가니 느끼했던 입속을 청소해주었다.식사 후 ‘바른청년연합’ 대표 손영광 부단장의 ‘과학도 삼켜버린 PC주의의 허울’이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들었다. 출발하기 전 ‘빌드업 클럽 세미나’를 들어서 그런지 더욱 이해하기 쉬웠고 이승만 박사의 대단한 통찰력과 우리의 무지함을 실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내일은 미국 본토인 보스턴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단장 조평세 박사가 진행하는 일정 브리핑의 이야기를 이어가며 하와이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로 했다.일반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하와이하면 낭만적이고 신혼여행지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곳곳을 탐방하고 보니 하와이는 눈물의 섬, 희생과 회복으로 다져진 역사의 상징을 담고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우리나라와 관계가 있는 역사의 흔적들을 다시 한 번 밟아 보고 싶다.   ‘리틀 이승만’ 최성민미국역사탐방 2024 견미단원Young Conservative Leadership Tou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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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계뉴스] [최선 칼럼] ‘견미단’이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 미주교회신보2024.07.28
    [2024 '견미단' 미국 역사탐방 하와이 사진제공 최성민]  유난히 비가 많았던 겨울이 지나 봄내 음 가득할 무렵에 지인의 소개로 ‘견미단’을 접하게 되었다. 자유민주주의 보수청년들을 교육하여 장차 리틀 이승만으로 세우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조평세 박사와의 만남은 특별한 섭리로 다가왔다.2024 견미단은 1776년 미국의 독립정신을 배우고 1948년 대한민국 건국정신을 함양하는 목표를 두고 있다. 자유민주주의가 꽃피운 미국을 바로 알아보고 140년 전에 ‘보빙사절단’의 걸음들을 체험하기 위하여 역사 탐방을 다녀왔다.독립 전후로 크게 영향을 받았던 미국에서 우남 이승만 박사의 독립외교와 역사의 흔적을 밟아가며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대한민국 건국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필자가 참석을 하고 싶었지만 사실 불가능한 것이었기에 아들에게 ‘견미단’을 소개해주었다. 아래의 글은 2주간의 역사 탐방 후 하와이에서 느낀 아들의 탐방 단상을 옮긴다.나의 ‘견미단’ 활동은 6월 29일 오후 4시 빌드업 클럽 세미나에서 시작되었다. “서울대학교 출신 과학자가 말해주는 PC주의의 허울”이라는 제목으로 김민아 대표와 조평세 박사 그리고 손영광 교수, 책 읽는 사자의 강사들에게 세미나를 들었다.북한인권의 대한 기초기식과 과학적 지식이 부족했던 나는 이번 세미나를 통해 견미단 일정을 시작하기 전 북한과 중국동포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하고 PC주의자가 무엇이며 우리가 지금까지 잘못 받아드리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배우고 느끼는 2시간 30분의 시간이었다.Young Conservative Leadership Tour를 참석하기 1주일 전 단장과 부단장을 중심으로 견미단의 시작을 알리고 후원을 지원받고자 ‘연세대학교이승만연구원’이 주최한 “대한민국의 발전과 건국전쟁”과 사단법인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한미우남포럼 이승만과 대한민국”에 참석하게 되었다.양준모 연세대학교 이승만 연구원장을 시작으로 이각범 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과 이석복 대불총 대표가 ‘대한민국 발전과 불교계의 역할’에 대한 강의를 하였다. 개인적으로 이승만 박사는 기독교인으로써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시간으로 이승만 박사가 종교의 자유를 위해 많은 헌신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불교계에 끼친 영향과 불교계의 대한 오해, 국민의 대한 사랑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또한 데이비드 위스콘신대학교 교수와 김영기 조지 워싱턴 대학교 박사, 최불암 배우 등 많은 분들이 포럼에서 ‘자유민주주의 뿌리’, ‘농지개혁의 혁명’, ‘교육으로 깨어난 한국인’, ‘해방공간의 승리’, 선교사들의 헌신이라는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승만 박사에 대한 이야기와 지식을 접할 수 있었다.7월 6일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서 2024 견미단 발대식으로 활동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한서영 홀리원코리아 대표의 ‘조선 개화와 정동, 그리고 이승만’ 이라는 제목으로 특강이 있었다. 역사를 좋아하고 근현대사의 지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특강을 통해 역사를 바로 알지 못했음을 깨닫고 새롭게 배우는 마음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다시 공부하게 되었다.조평세 박사의 O.T 설명으로 배제학당역사박물관을 관람하고 아펜젤러의 대한 역사를 배워나갔다. 총 54명의 견미단원은 9조로 편성되어 조별활동을 중심으로 진행하였다. 견미단 활동에 있어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의 후원 및 사업에 대한 목적을 알기 위해 방문했다. 후에 덕수궁 안에 있는 돈덕전을 견학하며 한국투어를 시작했다.7월 14일 각자 섬기는 교회에서 예배를 마친 늦은 오후 공항으로 마중 나온 가족들과 작별한 견미단원들이 인천공항에 모여 출국준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첫날부터 작은 그러나 땀나는 에피소드가 발생하였다. 한 조가 탑승시간을 착각하는 통해 마치 ‘나 홀로 집에’서 가족들이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 달렸던 장면과 흡사하게 출국심사가 끝나자마자 400m 달리기를 시작하였다. 100m마다 지상승무원들이 달려와 신분을 확인하고 같이 달렸다. 불과 1-2분만 늦었어도 비행기 탑승이 안 될 뻔 했던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탑승이 허용되었다.정말로 마음이 졸였지만 잠시나마 짜릿했고 단장과 견미단원들에게 미안함을 글로 표현한다.9시간 45분이라는 긴 비행 후 목적지인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였다. 14일 주일 밤에 출발하였는데 목적지에 도착하니 다시 14일 주일 아침이라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도착 후 버스에 탑승한 일행은 점심을 먹기 위해 알라모아나 해변으로 이동하였다. 관광버스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바퀴가 6개로 구성되어있고 길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공항을 지나는 차량들을 보니 도요타와 포드 브랜드가 많이 보였다. 픽업트럭이 많이 보였지만 생각보다 승용차와 세단 차량도 많이 보였는데 현대차와 기아차도 1분에 한 대 꼴로 보여서 신기했다. 공항셔틀버스와 시내버스도 돌아다녔는데 우리나라 버스와 다르게 버스 두 대가 전철처럼 붙어 있었다.알라모아나 해변에 도착한 일행은 도시락을 기다리며 계획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게 되었다. 그늘 아래 자리 잡은 곳 바로 옆에 마침 전 한인기독교회 양효직 목사와 에드먼드 황(전 하와이 동지회 회장)등이 야외예배를 드리기 위해 나와 있었는데 견미단을 알아보시고 식사와 간식으로 섬겨주셨다. 그들은 일 년에 한 번 야외예배를 드리는데 매년 8월에 드렸던 예배를 금년에는 특별히 7월에 드리게 되었는데 마침 ‘견미단’을 만났다고 하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참으로 오묘하다. 견미단 일정에는 없었지만 짦게나마 직접 느끼신 에드먼드 황의 이승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해변 주변에는 대한민국에서 볼 수 없는 크기의 나무들이 가득했다. 특히 뿌리가 위에서 아래로 생기는 나무가 제일 신기했다. 식사를 마치고 한인기독교회를 방문했다. 광화문 모양을 하고 있는 교회 입구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곳에는 이승만 박사의 동상과 옛 한인기독교회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거미줄과 부식된 외형에 많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후 오아후 공동묘지에 방문하게 되었다. 이곳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수양 딸 김노디와 민찬호 목사 등 900여명의 이민자들이 있는 공간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았던 공동묘지를 방문하면서 너무나 많은 이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 독립운동을 했다고 생각하니 그 분들에게 감사했고 또 큰 감동이 되었다.하와이 일정을 하는 2박 3일 동안에 낮에는 이승만 박사의 행적을 밟았고 늦은 저녁에는 작은 다과회와 KHHC의 만남, 오리엔테이션, 세미나가 있었다. 이번 역사탐방을 통해 한미동맹의 소중함과 나라와 민족을 향한 동포들의 애국심에 큰 감동을 받았다.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후 200개국의 신생 독립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경제와 국방 그리고 자유를 꽃피운 국가이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민족인가! 지금은 분단이 되어 갈 수 없지만 반드시 북한의 문은 열린 것이다. 남북통일을 준비하고 세계 열방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강국으로서 한국교회는 세워질 것이다. 바로 그 때 준비된 국가의 지도자이자 통일한국을 섬기게 될 자로 ‘견미단’의 모든 대원들이 크게 쓰임 받게 되기를 기대한다.최선 박사(Ph.D., Th.D.)세계로부천교회 위임목사삼백만부흥운동본부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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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주교계뉴스] Daniel Yoo 목사의 따뜻한 섬김 미주교회신보2024.07.26
     [미국 L.A. 한인타운 거리에서 노숙인에게 커피와 용돈을 전달하는 Daniel Yoo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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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계뉴스] [최선 박사 칼럼] 건강한 가족의 삶을 기대하며 미주교회신보2024.07.23
    [삼백만부흥운동본부 총재 최선 박사]사람마다 생활 방식이 다르다. 각자 소유하려는 욕망도 다르다. 그리고 무엇을 위하여 살려하는 목적도 다르다. 자신의 허물과 실수투성이를 속죄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내가 잘 못 살아 왔다는 반증이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며 성숙해지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젊음으로 혈기왕성했던 시절, 환경적인 힘이 있던 그 때에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행동들을 후회한다.80대인 김씨 영감님은 가정을 이루고 아들, 딸과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부부의 사랑에 자녀들은 누구보다 자신감을 갖고 학교생활을 했으며 친구 관계도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그가 술 마시는 날이 잦아지기 시작하였다. 해가 바뀌어 갈수록 중독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만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면서 급기야 최악의 지경까지 이르렀다.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는 가족들의 절박한 요구에 그는 할 수 없이 집을 나와 홀로 살게 되었다.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노숙생활로 힘겹게 살고 있었다. 먹는 것이 부실한 가운데서도 계속적인 음주 때문에 육체적인 질병까지 들어 홀로 견디기가 어렵게 되었다.그는 동사무소와 지역사회 사람들의 도움으로 쉼터까지 오게 되었다.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느낌에 늦게라도 용서를 구하기 위해 간절하게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아내와 자녀들은 그를 거부하였다. 그는 끝내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유가족들이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만나게 된 슬픈 사연은 이 시대의 자아상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또 다른 70대 박씨 어르신은 위의 사연과는 반대의 아픈 생활을 하다가 쉼터로 들어 왔다. 가족들은 박씨 어르신을 만나길 원하지만 정작 본인이 만나기를 거부하면서 마지막 생을 달리 하셨던 사례이다. 가족들에게 너무나 미안해했던 그는 끝내 마지막 인사까지도 거부하며 홀로 세상을 작별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여전히 누군가는 가족들 때문에 힘들어 하여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잊지 못하는 상처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비극인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자신의 욕심을 절제하고 유흥과 쾌락에서 빠르게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반드시 이 어두운 터널에서 탈출해야만 한다. 나로 인해 나의 가족들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정은 너무나 소중하다. 부부와 자녀들이 지지와 사랑 안에서 건강한 가정을 가꾸는 것은 중요하다.오늘은 아픔과 기쁨을 함께하는 쉼터에서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말씀을 선포했다. 과거의 다양한 아픔과 사건으로 인하여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소외된 이웃들에게 사랑으로 보듬고 내일을 향한 행복의 메시지로 소망을 찾는 시간들이었다.그곳은 노숙인, 출소인, 장애인, 노인 등 우리의 소외된 이웃을 섬기고자 38년 전에 설립된 자활 시설 공동체이다. 쉼터 가족들에게 재활교육을 통하여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며 천국의 소망과 비전을 깨닫게 하는 귀한 곳이다. 새로운 삶의 의지를 다지는 그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우리나라의 인구는 절벽이라고 할 만큼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저출산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가족이라는 가치가 더욱 귀해진다. 우리 사회가 근간을 이루는 가족을 더 귀히 여기어야겠다. 자신의 실수로 가정을 훼손하고 말년에 홀로 세상을 떠나야만 하는 슬픈 현실은 없어야 하겠다. 물론 우리사회에는 끈끈한 사랑으로 행복한 가정들이 많다. 그런데 물질과 명예 그리고 소유가 많다고 해서 가족들이 행복한 것이 아니다. 물론 가진 것이 많다면 삶은 풍족해질 것이다. 그러나 가정 안에 폭력과 돌이킬 수 없는 허물과 실수가 계속적으로 쌓인다면 가족의 평화는 깨지고 말 것이다.그러므로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 곰팡이처럼 음지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웃들을 찾아 보듬어 주고 심신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의지를 가지고 돌아보자. 그리고 소중한 가족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나타내자. 가족들이야말로 인생 마지막까지 함께 할 동반자임을 기억하면서 멋진 삶을 살아가자.   최선 박사(Ph.D., Th.D.)세계로부천교회 위임목사삼백만부흥운동본부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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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계뉴스] [최선 인터뷰] 튀르키예 선교사 진요한, 강인애의 사랑 실천 미주교회신보2024.07.19
     [사진제공 강인애 선교사 튀르키예에서 선교사역 활동]미국 LA에서 2024 KWMC주최로 7월 8일부터 11일까지 제10차 세계한인선교대회가 있었다. 2,000여명의 각국 선교사와 미국한인교회 목회자, 평신도 MK, PK 중심의 젊은 리더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4년마다 열리는 선교대회는 남가주사랑의 교회에서 “예수, 구원의 그 이름”(Jesus No Other Name!, 행 4:12) 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세대를 불문한 참가자들이 선교의 열정을 불태웠다.2023년 2월, 튀르키예에 84년 만에 최대 규모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튀르키예 동남부 가지안테프 인근을 강타한 모멘트 규모 7.8의 대 지진은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이른 새벽시간에 발생했기에 주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 지역은 초대교회의 안디옥으로 미주대한신학대학교 이사장 류당열 박사는 진요한, 강인애 선교사와 함께 지진 피해지역을 방문하였다.튀르키예(터키)에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있는 선교사와 통신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편집자 주>   Q: 주님 안에서 평안하신지요?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교사역과 자신을 소개해 주세요.A: 진요한 선교사-저는 1999년 8월에 있었던 7.8~7.9도의 대지진을 겪었습니다. 이곳에서도 7.8의 대지진을 겪으며 두려웠지만 그러나 주님의 역사하심도 체험하였기에 복음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 할 수 있었습니다. 튀르키예에서 어느덧 26년째 도장을 열고 태권도와 합기도를 통하여 원주민들에게 선교하고 있습니다.아울러 한방 의료선교와 도장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며 사역 해왔습니다. 2년 전부터는 현지인교회 목사님과 협력사역을 하고 있으며 일대일 관계전도에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 하고 있습니다.Q: 어떠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A: 강인애 선교사-저는 교회에 소속으로 현지인 목사님을 돕는 협력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도장에 나오는 학생들의 어머니들과 영어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복음을 나누고 있으며, 매주 목요일에는 교회성도들에게 일대일 제자훈련과정을 가르치는 제자양육 반을 섬기고 있습니다.그리고 여성 선교사님들과 함께 영어로 복음전하기 그룹을 만들어 매주 금요일마다 영어의 진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진 지역에도 그룹을 만들어 함께 섬기러 다녀오지만 거리상 멀어서 이 부분이 약간의 어려움이 있습니다.Q: 튀르키예 국가와 대한민국과의 역사적인 관계를 말씀해 주신다면?A: 튀르키예는 옛날 돌궐족의 후예들로서 우리조상 고구려와도 교류하며 중국의 수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군사동맹을 맺었던 나라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우랄알타이 산맥을 근간으로 살아가던 우리 조상들과 만나게 됩니다. 즉 민족적으로 형제인 셈입니다.그들은 1950. 6. 25한국전쟁에도 미국 다음으로 많은 전투병들을 보내줌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켜주었던 형제 국가입니다. 오늘날도 그들은 변함없이 UN에서 일어나는 모든 결의에서 대한민국을 적극 지지하는 나라입니다.Q: 튀르키예 선교지로 지원하여 선택하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요?A: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오직 주님께서는 튀르키예 선교방향만 남긴 채 우리들의 모든 삶의 길을 막으셨습니다. 이방인의 나라이지만 초대교회가 형성 되었던 곳입니다. 이곳에 와서 보니 살아계신 주님의 인도하심이 얼마나 정교하게 저희 부부의 삶을 이끄시는지 알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Q: 튀르키예 가장 큰 피해를 다녀 본 지역은 어디 인가요?A: 가장 피해가 심했던 지역 중 하나인 이스캔데룬이라는 지역입니다. 그곳에는 여름과 겨울을 견디도록 만들어진 컨테이너 하우스로 제작된 한국 마을이 세워져 있습니다. 피해를 많이 당한 분들에게 분양되었습니다. 이곳에도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Q: 미주대한신학대학교 이사장 류당열 박사님과 의료팀 사역을 말씀해 주세요?A: 저희 부부는 류당열(Daniel You)목사님과 함께 튀르키예 지진지역을 방문하였습니다. 집들과 건물 대부분이 무너져 내린 수리아 안디옥이 있었던 하타이(Hatay) 지역입니다. 그곳에서 1일 최대 3,000명에게 식사와 물을 제공하는 사역에 동참하여 섬기게 되었습니다.두 달 후 2차로 오신 미주지역 의료선교팀(팀장: 김인철 목사)의 방문으로 다시 한 번 강진으로 인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이재민들을 섬겼습니다. 그 후로도 비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습니다.Q: 마지막으로 선교사역 중에 가장 시급한 기도제목을 나누어 주신다면?A: 튀르키예 지진지역이 재건되려면 아마도 빠르면 10년 늦으면 20여년 이상 걸 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저희는 현재까지 지하에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해왔습니다. 하지만 습기와 각종 해충으로 인해 환경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있습니다.간절한 소원이 있다면 현재 선교센터로 사용되어지고 있는 태권도 도장이 이전하는 것입니다. 새롭게 마련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입니다. 건물이 곧 재건축을 진행할 것 같은데 그전에 이전을 하길 원합니다. 장기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태권도 사범이나 영어교사 등 동역자로 젊은 선교 헌신자들이 오시면 더욱 활력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그리고 이 사역이 주님의 뜻이라면 반드시 이루리라 믿으며 기도하는 중에 있습니다. 튀르키예 국가 선교를 위하여 많은 관심을 주시고 국내외 한인들의 적극적인 기도의 후원을 바랍니다.   열악한 선교지에서 현지인들에게 길과 진리, 생명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진요한, 강인애 선교사를 응원하고 기도한다. 선교는 사랑 실천이다. 그 사역이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최선 박사(Ph.D., Th.D.)세계로부천교회 위임목사삼백만부흥운동본부 총재FEBC극동방송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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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계뉴스] [최선 박사 칼럼] 스위스 제네바 종교개혁자들을 찾아서 미주교회신보2024.07.17
    종교개혁사를 공부하는 동안 몇 차례에 걸쳐 스위스와 서유럽을 탐방할 기회가 있었다. 특히 16세기 스위스의 제네바, 취리히, 바젤은 프랑스 위그노들이 가톨릭으로부터 정치적, 종교적 억압으로 고통을 겪었다. 종교개혁의 중심지였던 스위스로 프로테스탄트 피난민들과 종교개혁자들이 각국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생명의 진리를 위하여 많은 피를 흘린 그들의 불꽃같은 희생의 정신을 돌아보며 혼란한 시대에 신앙의 교훈을 삼고자한다. 16세기의 유럽은 기독교 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다양한 발전도 있었다. 그러나 종교적인 박해와 반성경적인 제도로 성경의 기본적인 진리에서 벗어나 성도들에게 큰 아픔을 가져다주었다. 가톨릭의 극심한 물질적, 윤리적 타락에 맞서서 종교개혁의 등불을 든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해 성경과 믿음을 강조하며 등장하게 되었다.본 글에서는 스위스 제네바 종교개혁자들을 찾아서 종교개혁의 정신적 교훈을 살펴보고자 한다.프랑스 출신이며 개혁교회의 기초를 닦은 존 칼빈이 종교개혁의 선두주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의 영향은 스위스와 프랑스가 바른 교회 개혁을 위한 열매를 맺게 되었다. 프랑스 국왕이 위그노들을 박해하자 칼빈은 개신교 도시였던 스위스 제네바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기욤 파렐의 강력한 요청으로 스위스 종교개혁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되었다.존 칼빈은 종교개혁 2세대로 마틴 루터의 개혁정신을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독일의 루터파는 그리스도 중심으로 이신득의 원칙을 매우 중시했다. 그리고 교회와 국가에 복종하며 가톨릭적이며 신학적인 요소를 유연하게 수용하였다.마틴 루터가 온건적 개혁주의였다면, 존 칼빈은 하나님 절대중심으로 절대주권과 원칙을 중시하며 국가와 교회분리를 주장했다. 그는 보다 혁신적이며 엄격한 개혁주의로 경건하고 강력한 신앙을 강조하였음을 인식할 수 있다.심지어 존 칼빈은 십자가 위에 예수의 형상을 달지 못하게 할 정도로 우상숭배에 대하여 매우 엄격했다. 그는 미사를 예배와 설교로 바꾸었다. 칼빈의 영향을 받은 스코틀랜드 출신 존 낙스는 본국으로 돌아가 장로교 목사, 장로, 집사, 교사로 구성된 교회 직제의 기초를 세우며 장로교를 발전시켰다.루터가 주장한 종교개혁의 기본 원칙은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이었다. 칼빈에 의해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합쳐져서 이른바 종교개혁의 5대 강령이 완성이 되었다.칼빈의 종교개혁 동료였던 기욤 파렐(Guillaume Farel, 1489-1565)은 칼빈보다 먼저 프랑스에서 추방을 당하였다. 그는 스위스에서 활동했던 순회 선교사이자 위그노 종교개혁자로 스위스 베른과 제네바를 종교개혁 도시로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칼빈이 제네바에서 활동하도록 주선하였고 개혁교회 설교자로 활동 하였다.칼빈의 후계자였던 테오도르 베자(Theodor Beza, 1519-1605)는 법률학도로서 1548년 심한 질병 후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하였다. 또한 베자는 제네바와 로잔에서 그리스어를 강의하였고 칼빈이 설립한 제네바 아카데미의 원장이 되었다.그는 프로테스탄트 개혁파를 옹호하였고 제네바 종교지도자인 칼빈의 후계자로서 베자 사본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4세기 말 고대 사본으로 1562년 1차 프랑스 종교전쟁 중에 리용이 약탈되던 중에 베자에게 인계되었고 1581년 캠브리지대학교 도서관에 기증되었다. 베자는 피난과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고통 받았던 프랑스 위그노들의 자문역할을 훌륭하게 담당하였다.존 낙스(John Knox, 1514-1572)는 16세기 영국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로 칼빈의 스코틀랜드교회의 창시자이며 장로교의 선구자였다.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제였지만 제네바에서 칼빈과 교류하면서 개혁주의 교회 확립을 위해 노력했다.존 낙스는 1561년 프랑스에서 귀국한 로마 가톨릭 신자인 여왕 메리스튜어트 1세가 교황 정치로의 회복 시도와 개혁주의 종교개혁을 방해하자 메리 1세를 비난하였다. 그리고 개혁주의 도입을 강력하게 촉구하였다. 1567년 여왕이 퇴위하고 그 아들 제임스 6세가 프로테스탄트 왕으로 즉위함으로서 존 낙스의 종교개혁이 스코틀랜드에서는 크게 인정받게 되었다.중세시대는 점점 종교가 타락해 오히려 반성경적이었으며 평신도는 성경을 읽을 수도 없는 시대였다. 성직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 하고 있었다. 종교개혁은 성경이 주장하는 원래의 복음적인 교회로 돌아가자는 신앙운동이었다. 본질과 멀어진 것들을 혁신적으로 개혁하고 수정하자는 개혁정신을 담고 있었다. 교황 중심 주의적인 권위와 인본주의적 발상으로부터 첨가 되고 오염된 의식 등을 제거하고 오직 믿음중심, 성경중심, 은혜중심, 예수중심의 신앙본질로 돌아가는데 오랫동안 피 흘림과 희생이 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에 마음이 아프다.우리는 가식적인 종교의식과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과 기쁨이 없는 신앙행위를 경계하여야 하겠다. 오늘은 스위스 제네바 종교개혁자들을 살펴보았다.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 기독교 정신이 사회를 정화하고 섬기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오직 생명의 복음을 전하며 크리스천들이 믿음과 삶의 실천을 통해 향기롭고 아름다운 열매가 풍성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최선 박사(Ph.D., Th.D.)세계로부천교회 위임목사삼백만부흥운동본부 총재[삼백만부흥운동본부 총재 최선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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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계뉴스] [최선 칼럼] ‘견미단’ 미래 지도자로 방미 역사 탐방 미주교회신보2024.07.06
    [2024 견미단 발대식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사진제공 최선 박사“견미단은 조선에 선교사가 들어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역사탐방 방미 위해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서 발대식 가져”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으로 고립되었고 세계의 흐름에 눈과 귀를 닫았다. 그 결과로 조선 말기는 통상무역을 하려는 대국들의 압력과 군사적 침략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는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결국 조선은 1882년 조미통상수호조약을 체결하면서 개방의 물꼬를 열었다. 다음해 고종은 민영익을 단장으로 한 사절단을 미국으로 파견하였다. 대표단의 공식 이름은 ‘보빙사절단’, 또 다른 이름 ‘견미단’으로 불렀다.견미단은 1883년 7월,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차로 시카고를 경유하여 워싱턴DC, 뉴욕, 보스턴까지의 대장정으로 소방서, 학교, 기업, 행정기관, 미 대통령과 정치인 조우하는 등 미국을 탐방하였다. 이들의 방미는 조선 말기의 개화 과정에 특별한 영향을 미쳤다.미국 볼티모어 기차역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었다. 평소에도 동양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존 가우처 목사는 견미단을 발견하고 통역을 대동하여 대화를 시도하였다. 이 사건은 그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응답 되는 순간이었다.당시 미국인들은 조선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만남으로 가우처 목사는 ‘은둔의 왕국’ 조선에 입국하는 것과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근대 자유 문명 유입의 물꼬를 여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가우처 목사는 일본에 있던 맥클레이 선교사에게 미국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전보를 보냈다. 결국 맥클레이 선교사는 미국에 있는 가우처 목사의 후원으로 조선으로 무사히 입국하였다. 그리고 그는 고종을 만나 미국 의료인과 교육인의 조선 입국을 공식적으로 허락을 받았다.위와 같은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 드디어 1884년에 호러스 알렌과 1885년 언더우드, 헨리 아펜젤러, 매리 스크랜튼 선교사 등이 조선으로 입국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은 견미단의 방미를 통해 동양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던 가우처 목사를 만나게 하셨다. 견미단은 단순히 사절단을 넘어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속에서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근대 문물과 자유사상이 조선에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1883년 견미단의 미국방문을 계기로 조선 선교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선교사들은 정동에 정착하여 정동제일교회, 근대식 배재학당과 독립신문사 등을 출범시켰다. 그 열매로 기독교 복음과 개화사상을 국민들에게 전파하였다. 이승만 대통령도 정동에 있는 배재학당에서 자유의 개념을 배우며 새로운 나라를 꿈꾸기 시작하였다.2024 견미단의 방미를 위하여 7월 6일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서 발대식을 가졌다. 역사탐방은 1776년 미국의 건국 정신이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으로 이어지는 독립정신과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뿌리와 기둥을 세워가는 견학이 될 것이다.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근대 한국의 자유와 독립사상이 태동하는 현장을 밟으며 역사의식을 고취할 것이다.이러한 시점에 우리나라 초대 및 건국 이승만 대통령의 국빈 방미 70주년을 기념하면서 역사적인 의미를 되새기고 10대 청소년과 20, 30대 청년 50명이 단장 조평세 박사/1776연구소 대표, 부단장 손영광 교수/바른청년연합 대표와 함께 7월 14일부터 27일까지 역사탐방을 떠난다.주요 탐방지로 하와이에서는 한인기독교회, 오아후 공동묘지, 호놀룰루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진주만 기념공원, 애리조나호와 미주리호, 칼리히 초등학교(한인기독학원 터), 마우나리 요양원 등을 방문한다.그리고 보스턴에서는 하버드대학교, 메이플라워호, 플리머스, 필그림파더스 기념탑 또한 뉴욕에서는 컬럼비아대학교, 맨해튼 영웅들의 골짜기 아울러 프린스턴에서는 프린스턴대학교 등을 견학한다.필라델피아에서는 이태산 묘지, 크라이스트처치, 리버티벨, 인디펜던스홀(독립기념관), 리틀시어터 그리고 애나폴리스에서는 메릴랜드 주의회, 워싱턴D.C. 링컨 메모리얼, 한국전쟁기념공원, 아메리칸대학교 이승만 벚꽃나무 등을 찾아 볼 예정이다.우리의 젊은 청년들이 미국의 독립 역사와 우남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 외교 및 역사의 흔적을 탐방하면서 자유대한민국 미래의 지도자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삼백만부흥운동본부 총재 최선 박사]  최선 박사(Ph.D., Th.D.)세계로부천교회 위임목사삼백만부흥운동본부 총재FEBC서울극동방송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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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계뉴스] [최선 박사 칼럼] 역전의 인생, 마부 이자익(李自益) 미주교회신보2024.06.27
    [삼백만부흥운동본부 상임대표 최선 박사] 조선시대 말 무렵 우리나라는 강대국 외세의 압력과 세계적인 식민지 쟁탈로 인한 약소국으로 파행을 걷고 있었다. 국내적인 정치적 혼란과 파당 싸움으로 국민들은 극한 경제적 가난과 불안한 삶을 영위하는 연속이었다. 특히 일본과 청나라 그리고 러시아 대국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실과 미래가 예측하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바로 그 시대에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섬마을을 떠난 소년이 있었다. 그가 바로 1879년에 태어난 이자익이다. 7세에 고아가 된 그가 배고픔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마을 곁에 있는 냇가로 가서 물을 실컷 마시고 얇은 돌을 멀리 던지며 놀이 삼아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고향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하던 청소년 이자익은 17세가 되던 해에 걸어서 전라도 전주까지 오게 되었다.길거리에서 일을 찾던 그에게 숙식이 가능한 갑부집이 있다는 소문을 따라 도착한 곳이 전북 김제에서 제일가는 금산 지주 조덕삼의 집이었다. 이자익은 주인을 만나 먹고 살 수만 있다면 마부로 채용해 주길 청했다. 후덕하기로 소문났던 지주는 그를 마부로 받아주었다.조덕삼의 아들이 훈장에게 천자문을 배우고 있었다. 방문 밖에서 자익이 엿듣고 있는 것올 본 주인은 방 안으로 그를 불렀다. 두려움에 빠져 있던 자익은 조심스럽게 그의 잘못을 시인하고 앞으로는 조심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주인 조덕삼은 마부를 혼내는 것이 아니라, 천자문을 외울 수 있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안심한 자익은 단숨에 천자문을 외웠다. 자익의 총명함을 발견한 주인은 그의 아들과 함께 공부하도록 했다. 자익은 주인의 배려로 한자를 터득할 수 있었다. 조덕삼은 일자무식이었던 그를 지식과 인격을 갖춘 청년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었다.어느 날 그곳을 지나가던 (L.B Tate, 테이트) 한국명, 최의덕 선교사가 조덕삼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저택은 말이 쉼을 가질 수 있는 시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덕삼은 선교사와의 만남으로 복음을 듣게 되었다. 인생 상담을 받았던 주인은 즉시 사랑방을 내어 주었고 오래 가지 않아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점점 교인들이 많아져 집회를 할 곳이 좁아 교회 건축의 필요성이 제기 되었다. 조덕삼은 과수원의 땅을 교회 부지로 하나님께 올려 드렸다. 성도들과 함께 합력하여 ㄱ자 금산교회를 완공하고 하나님께 영광의 입당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당회장인 최의덕 선교사는 교회의 일꾼이 필요하니 세례를 받은 교인들 중에 영수를 세우자 하여 투표가 있었다. 주인 조덕삼과 마부 이자익이 선출이 되어 교회와 교인들을 볼보기 시작하였다. 교회가 안정이 되자 교회의 살림과 선교사를 대신하여 예배 설교를 해야 하는 장로를 선출해야 했다. 장로 선출 투표가 있었다.그런데 교회건축에 헌신한 지주 조덕삼은 떨어지고 그의 하인인 마부 이자익이 장로로 선출되었다. 교인들이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 때, 조덕삼 영수는 “나보다 더 신앙이 좋고 교회를 이끌어 갈 이자익 장로님을 우리가 잘 섬기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갑시다” 라며 성도들을 오히려 설득하였다. 양반과 하인의 신분제도가 존재하던 그 시절에 있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하나님은 주인 조덕삼을 통해 진정한 섬김의 정신을 실천하게 하였다. 이것은 마치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의 마음을 닮은 것이었다. 교회가 안정이 되면서 교인들이 성장하였고 조덕삼 영수는 후에 장로로 피택 되었다.주인 조덕삼 장로는 마부 출신 이자익 장로를 평양신학교로 유학을 보냈다. 생활비 전부와 필요한 모든 학비를 주면서 하나님의 종으로 훈련을 받게 하였다. 이자익 장로는 한일합방이 있었던 해에 입학하여 5년 과정을 무사히 마쳤고 1915년 6월에 평양신학교 8회 졸업을 하였고 당당히 목사가 되었다.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어려움 속에 있었으나 주인의 도움으로 역전의 인생을 한 그는 자신이 신앙생활 하였던 김제 금산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다. 1919년 3.1운동과 6.25 한국전쟁으로 큰 고초를 겪었다. 또한 이자익 목사는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를 오가며 복음을 전했다. 그는 전북노회, 대전노회 등 여러 노회를 설립하는데 공헌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1924년 함경도 함흥에 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13회 총회에서 총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1947년 33회, 1948년 34회 총회장을 세 번씩이나 역임하였다. 전국 노회의 총대들에게 신임을 얻었고 가장 어려웠던 일제시대와 6.25 한국전쟁 전후로 한국교회에 지대한 헌신을 하였다.140년 한국교회 역사 가운데 이와 같은 이력을 갖고 있는 목회자가 있을까? 이자익 목사는 목회자, 선교사, 대전신학대학교 설립자인 동시에 미국 남장로교, 북장로교 선교부와 목회자들에게 신망을 받았던 사역자였다. 그의 능력을 인정한 정부에서 체신부 장관 등 입각 제의를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겸손하게 거절을 하였고 남은여생을 생명의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는 생명사역에 매진하였다.사람들은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실망과 좌절에 빠진다. 더 나아가 원망과 불평이 몸에 배여 있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자익 목사는 고아의 신분을 극복하였고 하인 생활에서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배우는 자세로 일관하였다. 그리고 성품과 신앙이 좋은 조덕삼 주인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사역에 평생을 보냈다. 그는 노회장과 신학교 교장, 그리고 총회장 등을 거치면서도 오직 생명을 살리는 영혼구원에 자신을 드렸다.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다한 이자익 목사는 1958년 79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어느 때 보다 한국교회가 혼란하다. 급기야 사회적, 문화적인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건강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격과 신앙이 건강한 크리스천들이 더 많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소망이 있다. 성령과 말씀이 이끄시는 거룩한 공동체로 사역을 감당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이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기독교가 지탄을 받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신앙의 선배 이자익 목사와 조덕삼 장로의 아름다운 관계가 한국교회의 소중한 자산으로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우리도 그들을 본받아 어려운 이 시대를 극복해 가는 통찰과 지혜가 있기를 기대한다.인생의 행복은 높은 학벌과 넉넉한 물질을 소유한 이들에게 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고아로 자라면서 하인의 신분임에도 포기하지 않고 성실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신실한 태도가 행복한 인생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그러므로 인간은 만남이 중요하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실망과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이가 있다면 반드시 기억하자.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역사가 이루어지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이루어진다” 하나님을 만나면 역전의 인생으로 살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기를 바란다.최선 박사(Ph.D., Th.D.)세계로부천교회 위임목사삼백만부흥운동본부 상임대표한국문인협회 시인작가FEBC서울극동방송 칼럼니스트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ㄱ자 금산교회-사진 제공 최선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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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주교계뉴스] 엔학고레 미션 대표 류당열 목사의 섬김사역 미주교회신보2024.06.14
    [엔학고레 미션 대표 류당열 목사의 섬김사역 사진]엔학고레 미션 대표 류당열 목사는 개척교회 이후 오랫동안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노숙인들을 섬기는 사역은 감동을 더해 준다.외롭고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류당열 박사는 또 다른 기쁜 일을 전하여 주었다.그는 2024년 6월 14일 낮 12시에 L.A 다운타운 다민족 노숙자교회에 힐체어 1대를 기증하였다.그리고 노숙자들에게 음료수와 식사를 제공하였고 기도로 영혼을 위로하였다. 미국사회가 다양한 민족으로 세워졌고 현대 시대에 와서는 점차적으로 양극화 현장이 두들어 지고 있는 상황이다.이러한 시점에 엔학고레 미션 대표 류당열 목사의 정기적으로 섬기는 사역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지속 가능한 일이라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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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주교계뉴스]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대신총회 진중 세례식 거행 미주교회신보2024.06.13
    2024년 제74주년 6.25 한국전쟁 기념일을 앞두고 있다.한국전쟁 휴전을 맞고 있는 우리나라는 6.25 한국전쟁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대신총회장 임병무 목사)주관으로 오는 6월 22일(토)오후 2시에 거행된다.대한민국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연무대 군인교회는 대신총회의 주관으로 진행될 예정이다.특히 진중 세례식에는 2,000명의 훈련병들에게 합동 세례를 베풀게 된다.미주에서는 기독연맹 대표 류 당열 목사가 참석을 하게 된다.미주 교회와 대한민국 교회에서는 적극적으로 중보기도를 부탁한다.대신총회 진중 세례식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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