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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계뉴스] [최선 칼럼] ‘견미단’ 미래 지도자로 방미 역사 탐방 미주교회신보2024.07.06
    [2024 견미단 발대식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사진제공 최선 박사“견미단은 조선에 선교사가 들어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역사탐방 방미 위해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서 발대식 가져”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으로 고립되었고 세계의 흐름에 눈과 귀를 닫았다. 그 결과로 조선 말기는 통상무역을 하려는 대국들의 압력과 군사적 침략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는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결국 조선은 1882년 조미통상수호조약을 체결하면서 개방의 물꼬를 열었다. 다음해 고종은 민영익을 단장으로 한 사절단을 미국으로 파견하였다. 대표단의 공식 이름은 ‘보빙사절단’, 또 다른 이름 ‘견미단’으로 불렀다.견미단은 1883년 7월,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차로 시카고를 경유하여 워싱턴DC, 뉴욕, 보스턴까지의 대장정으로 소방서, 학교, 기업, 행정기관, 미 대통령과 정치인 조우하는 등 미국을 탐방하였다. 이들의 방미는 조선 말기의 개화 과정에 특별한 영향을 미쳤다.미국 볼티모어 기차역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었다. 평소에도 동양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존 가우처 목사는 견미단을 발견하고 통역을 대동하여 대화를 시도하였다. 이 사건은 그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응답 되는 순간이었다.당시 미국인들은 조선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만남으로 가우처 목사는 ‘은둔의 왕국’ 조선에 입국하는 것과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근대 자유 문명 유입의 물꼬를 여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가우처 목사는 일본에 있던 맥클레이 선교사에게 미국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전보를 보냈다. 결국 맥클레이 선교사는 미국에 있는 가우처 목사의 후원으로 조선으로 무사히 입국하였다. 그리고 그는 고종을 만나 미국 의료인과 교육인의 조선 입국을 공식적으로 허락을 받았다.위와 같은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 드디어 1884년에 호러스 알렌과 1885년 언더우드, 헨리 아펜젤러, 매리 스크랜튼 선교사 등이 조선으로 입국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은 견미단의 방미를 통해 동양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던 가우처 목사를 만나게 하셨다. 견미단은 단순히 사절단을 넘어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속에서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근대 문물과 자유사상이 조선에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1883년 견미단의 미국방문을 계기로 조선 선교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선교사들은 정동에 정착하여 정동제일교회, 근대식 배재학당과 독립신문사 등을 출범시켰다. 그 열매로 기독교 복음과 개화사상을 국민들에게 전파하였다. 이승만 대통령도 정동에 있는 배재학당에서 자유의 개념을 배우며 새로운 나라를 꿈꾸기 시작하였다.2024 견미단의 방미를 위하여 7월 6일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서 발대식을 가졌다. 역사탐방은 1776년 미국의 건국 정신이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으로 이어지는 독립정신과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뿌리와 기둥을 세워가는 견학이 될 것이다.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근대 한국의 자유와 독립사상이 태동하는 현장을 밟으며 역사의식을 고취할 것이다.이러한 시점에 우리나라 초대 및 건국 이승만 대통령의 국빈 방미 70주년을 기념하면서 역사적인 의미를 되새기고 10대 청소년과 20, 30대 청년 50명이 단장 조평세 박사/1776연구소 대표, 부단장 손영광 교수/바른청년연합 대표와 함께 7월 14일부터 27일까지 역사탐방을 떠난다.주요 탐방지로 하와이에서는 한인기독교회, 오아후 공동묘지, 호놀룰루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진주만 기념공원, 애리조나호와 미주리호, 칼리히 초등학교(한인기독학원 터), 마우나리 요양원 등을 방문한다.그리고 보스턴에서는 하버드대학교, 메이플라워호, 플리머스, 필그림파더스 기념탑 또한 뉴욕에서는 컬럼비아대학교, 맨해튼 영웅들의 골짜기 아울러 프린스턴에서는 프린스턴대학교 등을 견학한다.필라델피아에서는 이태산 묘지, 크라이스트처치, 리버티벨, 인디펜던스홀(독립기념관), 리틀시어터 그리고 애나폴리스에서는 메릴랜드 주의회, 워싱턴D.C. 링컨 메모리얼, 한국전쟁기념공원, 아메리칸대학교 이승만 벚꽃나무 등을 찾아 볼 예정이다.우리의 젊은 청년들이 미국의 독립 역사와 우남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 외교 및 역사의 흔적을 탐방하면서 자유대한민국 미래의 지도자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삼백만부흥운동본부 총재 최선 박사]  최선 박사(Ph.D., Th.D.)세계로부천교회 위임목사삼백만부흥운동본부 총재FEBC서울극동방송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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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계뉴스] [최선 박사 칼럼] 역전의 인생, 마부 이자익(李自益) 미주교회신보2024.06.27
    [삼백만부흥운동본부 상임대표 최선 박사] 조선시대 말 무렵 우리나라는 강대국 외세의 압력과 세계적인 식민지 쟁탈로 인한 약소국으로 파행을 걷고 있었다. 국내적인 정치적 혼란과 파당 싸움으로 국민들은 극한 경제적 가난과 불안한 삶을 영위하는 연속이었다. 특히 일본과 청나라 그리고 러시아 대국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실과 미래가 예측하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바로 그 시대에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섬마을을 떠난 소년이 있었다. 그가 바로 1879년에 태어난 이자익이다. 7세에 고아가 된 그가 배고픔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마을 곁에 있는 냇가로 가서 물을 실컷 마시고 얇은 돌을 멀리 던지며 놀이 삼아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고향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하던 청소년 이자익은 17세가 되던 해에 걸어서 전라도 전주까지 오게 되었다.길거리에서 일을 찾던 그에게 숙식이 가능한 갑부집이 있다는 소문을 따라 도착한 곳이 전북 김제에서 제일가는 금산 지주 조덕삼의 집이었다. 이자익은 주인을 만나 먹고 살 수만 있다면 마부로 채용해 주길 청했다. 후덕하기로 소문났던 지주는 그를 마부로 받아주었다.조덕삼의 아들이 훈장에게 천자문을 배우고 있었다. 방문 밖에서 자익이 엿듣고 있는 것올 본 주인은 방 안으로 그를 불렀다. 두려움에 빠져 있던 자익은 조심스럽게 그의 잘못을 시인하고 앞으로는 조심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주인 조덕삼은 마부를 혼내는 것이 아니라, 천자문을 외울 수 있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안심한 자익은 단숨에 천자문을 외웠다. 자익의 총명함을 발견한 주인은 그의 아들과 함께 공부하도록 했다. 자익은 주인의 배려로 한자를 터득할 수 있었다. 조덕삼은 일자무식이었던 그를 지식과 인격을 갖춘 청년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었다.어느 날 그곳을 지나가던 (L.B Tate, 테이트) 한국명, 최의덕 선교사가 조덕삼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저택은 말이 쉼을 가질 수 있는 시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덕삼은 선교사와의 만남으로 복음을 듣게 되었다. 인생 상담을 받았던 주인은 즉시 사랑방을 내어 주었고 오래 가지 않아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점점 교인들이 많아져 집회를 할 곳이 좁아 교회 건축의 필요성이 제기 되었다. 조덕삼은 과수원의 땅을 교회 부지로 하나님께 올려 드렸다. 성도들과 함께 합력하여 ㄱ자 금산교회를 완공하고 하나님께 영광의 입당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당회장인 최의덕 선교사는 교회의 일꾼이 필요하니 세례를 받은 교인들 중에 영수를 세우자 하여 투표가 있었다. 주인 조덕삼과 마부 이자익이 선출이 되어 교회와 교인들을 볼보기 시작하였다. 교회가 안정이 되자 교회의 살림과 선교사를 대신하여 예배 설교를 해야 하는 장로를 선출해야 했다. 장로 선출 투표가 있었다.그런데 교회건축에 헌신한 지주 조덕삼은 떨어지고 그의 하인인 마부 이자익이 장로로 선출되었다. 교인들이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 때, 조덕삼 영수는 “나보다 더 신앙이 좋고 교회를 이끌어 갈 이자익 장로님을 우리가 잘 섬기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갑시다” 라며 성도들을 오히려 설득하였다. 양반과 하인의 신분제도가 존재하던 그 시절에 있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하나님은 주인 조덕삼을 통해 진정한 섬김의 정신을 실천하게 하였다. 이것은 마치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의 마음을 닮은 것이었다. 교회가 안정이 되면서 교인들이 성장하였고 조덕삼 영수는 후에 장로로 피택 되었다.주인 조덕삼 장로는 마부 출신 이자익 장로를 평양신학교로 유학을 보냈다. 생활비 전부와 필요한 모든 학비를 주면서 하나님의 종으로 훈련을 받게 하였다. 이자익 장로는 한일합방이 있었던 해에 입학하여 5년 과정을 무사히 마쳤고 1915년 6월에 평양신학교 8회 졸업을 하였고 당당히 목사가 되었다.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어려움 속에 있었으나 주인의 도움으로 역전의 인생을 한 그는 자신이 신앙생활 하였던 김제 금산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다. 1919년 3.1운동과 6.25 한국전쟁으로 큰 고초를 겪었다. 또한 이자익 목사는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를 오가며 복음을 전했다. 그는 전북노회, 대전노회 등 여러 노회를 설립하는데 공헌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1924년 함경도 함흥에 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13회 총회에서 총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1947년 33회, 1948년 34회 총회장을 세 번씩이나 역임하였다. 전국 노회의 총대들에게 신임을 얻었고 가장 어려웠던 일제시대와 6.25 한국전쟁 전후로 한국교회에 지대한 헌신을 하였다.140년 한국교회 역사 가운데 이와 같은 이력을 갖고 있는 목회자가 있을까? 이자익 목사는 목회자, 선교사, 대전신학대학교 설립자인 동시에 미국 남장로교, 북장로교 선교부와 목회자들에게 신망을 받았던 사역자였다. 그의 능력을 인정한 정부에서 체신부 장관 등 입각 제의를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겸손하게 거절을 하였고 남은여생을 생명의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는 생명사역에 매진하였다.사람들은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실망과 좌절에 빠진다. 더 나아가 원망과 불평이 몸에 배여 있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자익 목사는 고아의 신분을 극복하였고 하인 생활에서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배우는 자세로 일관하였다. 그리고 성품과 신앙이 좋은 조덕삼 주인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사역에 평생을 보냈다. 그는 노회장과 신학교 교장, 그리고 총회장 등을 거치면서도 오직 생명을 살리는 영혼구원에 자신을 드렸다.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다한 이자익 목사는 1958년 79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어느 때 보다 한국교회가 혼란하다. 급기야 사회적, 문화적인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건강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격과 신앙이 건강한 크리스천들이 더 많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소망이 있다. 성령과 말씀이 이끄시는 거룩한 공동체로 사역을 감당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이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기독교가 지탄을 받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신앙의 선배 이자익 목사와 조덕삼 장로의 아름다운 관계가 한국교회의 소중한 자산으로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우리도 그들을 본받아 어려운 이 시대를 극복해 가는 통찰과 지혜가 있기를 기대한다.인생의 행복은 높은 학벌과 넉넉한 물질을 소유한 이들에게 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고아로 자라면서 하인의 신분임에도 포기하지 않고 성실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신실한 태도가 행복한 인생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그러므로 인간은 만남이 중요하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실망과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이가 있다면 반드시 기억하자.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역사가 이루어지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이루어진다” 하나님을 만나면 역전의 인생으로 살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기를 바란다.최선 박사(Ph.D., Th.D.)세계로부천교회 위임목사삼백만부흥운동본부 상임대표한국문인협회 시인작가FEBC서울극동방송 칼럼니스트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ㄱ자 금산교회-사진 제공 최선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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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주교계뉴스] 엔학고레 미션 대표 류당열 목사의 섬김사역 미주교회신보2024.06.14
    [엔학고레 미션 대표 류당열 목사의 섬김사역 사진]엔학고레 미션 대표 류당열 목사는 개척교회 이후 오랫동안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노숙인들을 섬기는 사역은 감동을 더해 준다.외롭고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류당열 박사는 또 다른 기쁜 일을 전하여 주었다.그는 2024년 6월 14일 낮 12시에 L.A 다운타운 다민족 노숙자교회에 힐체어 1대를 기증하였다.그리고 노숙자들에게 음료수와 식사를 제공하였고 기도로 영혼을 위로하였다. 미국사회가 다양한 민족으로 세워졌고 현대 시대에 와서는 점차적으로 양극화 현장이 두들어 지고 있는 상황이다.이러한 시점에 엔학고레 미션 대표 류당열 목사의 정기적으로 섬기는 사역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지속 가능한 일이라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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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주교계뉴스]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대신총회 진중 세례식 거행 미주교회신보2024.06.13
    2024년 제74주년 6.25 한국전쟁 기념일을 앞두고 있다.한국전쟁 휴전을 맞고 있는 우리나라는 6.25 한국전쟁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대신총회장 임병무 목사)주관으로 오는 6월 22일(토)오후 2시에 거행된다.대한민국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연무대 군인교회는 대신총회의 주관으로 진행될 예정이다.특히 진중 세례식에는 2,000명의 훈련병들에게 합동 세례를 베풀게 된다.미주에서는 기독연맹 대표 류 당열 목사가 참석을 하게 된다.미주 교회와 대한민국 교회에서는 적극적으로 중보기도를 부탁한다.대신총회 진중 세례식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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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계뉴스] [최선 칼럼] 대한민국의 선교사 입국 과정 미주교회신보2024.06.11
      [삼백만부흥운동본부 상임대표 최선 박사]   18-19세기의 우리나라는 혼돈에 빠져 있었다. 쇄국정책으로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고립된 상태로 세계정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당파싸움이 과열되고 있었으며 외세의 압력으로 좌충우돌하고 있었다.19세기 말의 우리나라는 이처럼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의 순간에 직면하고 있었다. 세계 강국들에 의하여 식민지배가 보편화 되어 있던 시대에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하였다. 사회, 문화, 교육, 의료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기독교 정신은 자유대한민국의 발전에 너무나 큰 발자취를 남겼다.그 역사적인 발걸음을 짧게라도 돌아보는 것은 이 시대를 조명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크리스천들이 겸손하게 사역의 현장에서 고마움을 가지고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선교사 입국의 흐름들을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아침에 북 장로교 언더우드 선교사와 감리교 아펜젤러 선교사가 단편이지만 일본에서 조선어로 번역한 성경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입국하였다. 뒤를 이어 감리교 스크랜턴 부처와 모친 매리 스크랜턴, 헤론이 입국하였다.호주장로 교회에서는 1889년 10월에 데이비스와 그의 누이가 입국하였다. 그리고 영국 성공회에서는 1890년 코프 감독과 6명의 목사, 그리고 2명의 의사가 조선 땅에서 선교 사업을 시작하였다.미국 남장로교는 1892년 호남지방 선교를 시작으로 테이트 목사, 그의 누이 마티, 데이비스, 평양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친 이눌서 목사, 전킨 목사가 선교를 진행시켰다.미국 남감리교 선교부는 1896년 리드 목사를 보내었다. 그리고 캐나다 장로교회 출신인 맥켄지 목사는 독립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소래에 거주하면서 서경조(서상륜의 동생이며 후에 장로교 초대 목사가 되었음)의 도움을 받아 소래교회를 신축하였다.후에 캐나다 장로교회는 맥켄지의 죽음을 계기로 1898년에 그리어슨 부처, 푸트 목사 부처, 맥캐어가 함경도에서 선교를 시작하였다.펜윅을 통하여 시작된 침례교의 선교는 1895년 폴링, 게이들린 등이 충청도 공주와 강경에서 활동하였다. 하지만 재정적 어려움으로 중단되자 펜윅이 인계하여 1906년에 ‘대한기독교회’라는 독자적인 조직을 갖추고 선교에 착수하였다.성결교회는 도쿄에서 성서학원을 졸업한 김상준, 정빈이 1907년에 귀국하여 전도하기 시작하였다. 1921년 ‘조선 예수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라고 개칭하고 웨슬리 사상을 따르며 4중복음의 교리를 가졌다.또한 구세군의 선교는 1908년 호가드의 내한으로 시작되었다. 자유교회로 알려진 플리머스 형제단은 1896년부터 시작되었고 노리마츠와 조덕성, 신태일 등과 함께 서울과 경기 지방을 중심으로 전도활동을 펼쳤다.선교사들이 다양한 면에서 조선의 개화와 사회적인 계몽에 기여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정부 인사들은 선교사들을 일정부분 다른 인사들보다 좀 더 신뢰하고 인정했다.그러나 자신의 권력에 대한 보다 큰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여 전국적으로 자유로운 선교는 유보돼 있었고 전적으로 허락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우회적으로 조심스럽게 트라이앵글 선교정책으로 선회하여 먼저는 학교를 설립하였고 다음으로 병원을 개원하여 국민들과 친숙한 관계를 맺으면서 자연스럽게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선교초기 목숨을 담보로 우리나라에 입국하여 생명의 그리스도를 전하였던 선교사들의 희생과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복음을 받은 후손으로서 지혜로운 선교방법을 채택한 선교사들의 사역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였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 주셨다. 제자들에 의하여 세워진 초대교회 이후 지구촌에서 복음을 전하였던 수많은 선교사들이 있었다.물론 한국교회 선교역사 140년의 세월동안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의 목양일념으로 성령의 열매를 바라보며 묵묵히 달려왔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사역자들의 수고에 성령하나님의 위로와 인도하심을 간구한다.장차 선교 강국으로서 한국교회와 기독교 선교단체가 더욱 발전되어 생명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땅 끝까지 증거하며 창조의 사명, 복음의 사명, 사랑의 사명을 전하는 탁월한 주의 종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최선 박사(Ph.D., Th.D.)세계로부천교회 위임목사삼백만부흥운동본부 상임대표한국문인협회 시인작가FEBC서울극동방송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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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주교계뉴스] 미주 대한신학대학교 임시 교사 마련하다 미주교회신보2024.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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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계뉴스] [최선 칼럼] 순국자들의 애국정신을 기억하자 미주교회신보2024.05.13
      민족과 국가의 수호와 발전에 기여하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열사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희생한 모든 이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키는 국가 기념의 날이 현충일이다. 국가의 흥망성쇠로 치닫는 과정에서 개인의 안일과 성공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애국의 정신으로 목숨을 바친 고귀한 희생은 반드시 국가적 차원에서 존대를 받아야 한다.물론 국민들도 한 마음으로 염원을 담아 그분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표현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삼백만부흥운동본부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 그리고 6.25한국전쟁 등 국가의 안위를 위하여 희생한 분들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조국의 평화를 위하여 희생하신 고귀한 순국자들의 정신을 기억하자. 자유대한민국의 건국 전 후로 많은 희생이 있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전장에서 30만 명 이상이 전사하였고 실종, 부상 등 많은 국가적 아픔이 있었다. 유족들과 후손들은 상처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개인과 가족의 고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아픔을 담고 있다. 따라서 현충일을 맞이하여 희생하신 분들의 애국정신을 반드시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이 나라를 물려주자.하나님사랑 나라사랑을 실천하는 국민이 되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최고의 피조물이다. 타락한 인류를 향한 아가페의 사랑은 고귀하다. 예수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그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종의 형체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복종하셨다. 절대 복종의 마음, 낮아지는 겸손의 마음,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희생의 본을 실천하신 정신이었다.나라가 존재하기 위하여 국민과 국토가 있어야 한다. 외세의 침범을 막기 위해 국방력이 강화 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이 생명을 바쳐 희생한다는 것은 최고의 애국이다. 젊음과 미래의 성공을 뒤로하고 나라를 사랑하여 순국의 길을 걸은 분들의 애국의 실천 정신은 이어져야 한다.가정에서 자녀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을 가르치자. 우리나라가 경제적인 발전과 민주화 되면서 개인주의와 이기심에 길들여져 있다. 근시안적인 역사의식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진정한 애국정신을 고취시키는 교육을 가정에서 부터 실천하는 모범을 보이자. 전후세대들은 한국전쟁의 아픔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실정에서 다음세대를 책임지는 부모로서 책무를 감당하기를 기대한다.모든 국민들은 진정한 현충일의 의미를 되새기며 기억하자. 현재의 대한민국의 평화는 공짜로 된 것이 아니다. 문맹이었지만 지혜로웠던 우리의 부모들은 자녀의 내일을 위해 땀 흘려 농사를 짓고, 땅과 소를 팔아 교육을 시켰다. 이처럼 조상들의 희생이 녹아져서 지금의 국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한 정신이 애국정신으로 이어져 우리의 부모 세대들은 포기하지 않고 내일의 꿈을 향하여 달려왔다.그러므로 자유대한민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하여 희생하신 분들을 예우하는 현충일에 국기를 게양하자. 그리고 전국 각처에 있는 국가 유공자가 잠들어 있는 국립묘지를 방문하여 현충일을 의미 있는 날로 지키는 실천을 하자.전장에서 순국하여 아직도 산하에 잠들어 있는 유해를 발굴하여 기리자. 6.25한국전쟁에서 적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유해를 발굴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실행하자. 물론 군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흘러 고령의 유족들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분들이 살아계실 때 찾아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과학적인 도움을 받아 금년에는 더 많은 유해 발굴로 보훈 가족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현충일이 되기를 소망한다.한국교회는 애국의 정신을 가르치고 생명을 존중하자.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나라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없다.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와 전도 그리고 선교사역은 건강한 나라가 유지가 될 때 힘을 얻는다. 한국교회는 신앙교육과 애국교육을 같이 하자. 당대와 다음세대에 자유 평화가 이어지는 축복의 나라를 위하여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국가기념일을 보내면서 국민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면서 다시는 전쟁과 국가적인 재난이 없도록 나라의 구성원들은 하나의 마음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풍토가 조성되도록 힘써 실천하자.지구촌의 화약고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의 전쟁 종식과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자. 문명이 최고조에 있는 21세기 지구촌 어느 지역에서는 지금도 전쟁으로 고통당하고 있다. 인명과 물적 피해, 가정의 파괴, 그리고 전쟁고아 등 아픔을 겪고 있는 난민들을 국제구호기구 등에서 적극적으로 보살피자. 그리고 하루빨리 전쟁이 종식되고 휴전이 되어 더 이상 선량한 백성들의 생명이 헛되이 죽어가는 사태를 종결하자. 전쟁을 주도하는 국가의 지도자들과 상대국의 국민들이 죽고 죽이는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평화의 그 날이 속히 도래하여 쌍방이 잘 살 수 있는 지혜로운 길을 택하기를 기대한다.최선 박사삼백만부흥운동본부 상임대표한국문인협회/한국문학방송 시인작가FEBC극동방송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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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계뉴스] [최선 칼럼] 독서는 인생의 좋은 스승 미주교회신보2024.05.05
    삼백만부흥운동본부 상임대표/시인작가 최선 박사  지구촌 곳곳에서 가정의 달을 맞이하는 소중한 독자들의 부부와 자녀들이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이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매서웠던 겨울을 지나 나무의 새순이 돋아나는 봄을 맞이했다. 온통 초록으로 물들인 봄, 인간만의 특혜인 책 읽기가 독자들의 생활에 스며들기를 바란다.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 영향을 끼친 사람들의 삶을 면면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혼자서 사색하고 기도하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처칠, 루즈벨트, 링컨과 같은 사람들은 혼자만의 시간으로 큰 유익을 얻었다고 고백했다.나 홀로의 시간은 고독의 시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일을 추진하는데 참으로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공간에서 최소한 30분 이상 독서의 시간을 갖는다면 우리의 인생은 한층 달라질 것이라 확신한다.사람들은 독서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 대부분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압박감이 더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책을 손에 다시 잡기가 두려워하거나 애독이 어려워질 뿐이다.과제로 여겨 일독을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읽기로 한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독서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작가들에 의해 지금 이 순간에도 넘쳐나고 있다. 그 중에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 특히 나에게 더 의미 있는 책은 소수일 것이다.완독에 대한 부담감을 버리지 않는다면 지속적으로 책을 읽을 수가 없다.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를 유지하는 것이다. 목적을 위한 독서는 한계가 분명하다. 사람은 사실 그렇게 의지가 강하지 못해서 목적만을 위해 행동할 수 없다. 독서에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재미가 있어야 독서도 즐거운 법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골라 읽을 수 있는 자유, 책 읽기의 즐거움도 있지만 책 읽기의 괴로움도 있을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책은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인데 스르륵 읽어내는 책들도 있지만 행간 속을 줄치며 노트 정리하며 그렇게 분석해가며 읽는 책들도 있다.독서는 가볍게 시작했다가 무겁고 단단해지는 것, 그것이 책의 방향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조금 편안하게 책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것은 한 템포 쉼을 주기도 한다. 어디에 메이는 것보다는 즐거워할 수 있는 독서의 행위로 지속된다면 좋겠다. 완독도 좋지만 쉬었다가 다시 잡을 수 있는 그 여유로움, 그때는 또 다시 어렵던 행간이 새롭게 읽혀지기도 하는 기쁨과 행복, 만족이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책을 읽는 방향과 목적은 여러 가지인 듯하다. 자신에게 맞는 것을 스스로 찾아내야하는 좋은 책은 충분히 인생의 스승이 되어 준다. 특정한 것에 메이다보면 스스로의 굴레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 독서가 아닌가 싶다.사색하며 자신의 책을 발견해 낸다는 건 큰 기쁨이고 그것이 나를 다스리며 함께 우리와 동행되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큰 행복일 것이다. 독서는 나의 자아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 미소가 흘러나오게 한다. 의무적으로 독서할 이유가 없다.그런 독서는 유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독서는 시험공부와 다른 것이다. 하지만 책 읽는 좋은 습관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당분간은 자신을 혹독하게 훈련할 필요는 있다.필자는 16세기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자 존 녹스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많은 책들을 의무감으로 정독하고 속독을 했었다. 원서를 읽으며 종종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후에 독서습관이 몸에 배여 이제는 자연스럽게 즐기는 다양한 독서가 가능해졌다.대한민국 국민들 중에 일 년에 책 한 권을 읽는 사람이 적다는 말들을 한다. "한 권의 책은 나의 충실한 친구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즐기는 독서가 되기 위해 책 읽는 습관을 길들이는 것은 의미 있는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다.그렇다면 오늘부터 우리 모두가 책과 함께 보리밭 사잇길로 사색하는 마음의 여유로 녹색의 싱그러운 봄을 즐기며 최고의 멋진 내일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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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주교계뉴스] 에스더 한 시집 "원죄의 평범성" 미주교회신보202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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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주교계뉴스] <나의 삶 이야기 수필> 미주교회신보2024.04.23
    <나의 삶 이야기 수필>내 얼굴을 악인으로 인상이 험악 하지 않고 예쁘게 만들어 주신하나님께 감사를드립니다.싸구려 옷을 이것저것 아무것이나입어도옷맵시가 좋다는소리를 지금까지 들으면서 살고 있기에 옷에 돈쓸 일이 없어서 좋습니다 다른 사람 문제에끼어들어 이것 저것판단하는 그런 일을하지않고 살았습니다 역시 주님의 은혜입니다.사람을 만나면 항상 반갑고사람을 좋아하고또한 벙어리 되지 않고늘 입에서 찬송을부르게 하심에 삶이 밝아서 좋습니다 오랜세월 섬겨야 할 성도님들이 있어서부지런한 일꾼이 됐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미련하고 부족함 때문에 죄짓는 일이적어서 특별한 은혜의사랑 때문에 주께 영광을 드립니다 나의 전 재산은 나를 귀하게 여기며 사랑해 주는 가족입니다 귀한 가족을 주심에감사를 드립니다 험난한 세상을 이기며 살도록 남편의 배려와 나의 자녀들의 도움 때문에 외로운 인생길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좋은 것 있으면 나에게 주고 싶어하는 천사 남편이 있기에힘든 시간도 견딜수 있습니다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지않도록 성령께서 늘 인도하여 주심에 진실로 감사를드립니다 시기와 질투와 욕심없이 단순하게 사는 것이 축복임을 알고 살아가는 내 삶에 치매병 없이 그날 까지 살수가 있도록 지구촌 모둥이에서 감사 기도 하는 채에스더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인도 하시고 지도 하소서" 시 편 31 편 3절항상 마음이 고요해 지고 낙엽 하나 굴러가는 것도 멋으로 느껴지고 신앙생활도 오랫동안 할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주님의은혜 입니다. 돈 많고 좋은 것을 하고 싶은 욕심도 없고 예쁘고 잘나고 멋있고 권력 있는 사람을 봐도 나도 그런 사람이 됐으면 하고 마음먹은 적도 없습니다. 늘 영적으로 깨어 있기를 소망합니다. 가정도 없이 살은 나에게 주님의 은혜로 좋은 가정을 주셨습니다. 좋은 가정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좋은 가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공룡 체인에게 좋은 가족을 허락하심을 감사하며 짧은 휴가를 마치고 오늘은 집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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