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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갑옷 솔기의 인생 "박병훈 목사, 유니온교회" 미주교회신보2022.07.07
    아합의 최후에 대하여 설명하는 열왕기상에서는 이스라엘의 아합왕이 유다의 여호사밧왕에게 이르기를 나는 변장하고 군중으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고 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합왕은 변장을 하고 전투를 합니다. 그러나 아람왕이 지휘관 삼십이 명에게 오직 아합왕과만 싸우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심코 쏜 적병의 화살 하나가 아합왕의 갑옷 솔기에 꽂혔습니다. 이때 왕이 자기 전차병에게 ‘내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아합왕이 전차를 돌려 여기서 빠져나가자!’ 라고 하였으나 하루 종일 전투가 치열하므로 아합왕은 자기 전차에 버티고 서서 시리아군과 맞서 싸우다가 저녁때에 죽었으며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전차 바닥에 흥건하게 고였습니다. 아합왕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군인이 쏜 화살에 맞고서 전쟁 중에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면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고 이렇게 끝이 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개들이 피를 핥아먹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전차는 창녀들이 목욕하는 사마리아 연못에서 씻었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개들이 와서 그 피를 핥아먹었다.(왕상22:30-38)‘갑옷 솔기’는 무엇입니까? 갑옷은 두텁게 만들거나 통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전투를 할 때 가볍고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즉 작은 조각들을 연결시키거나 어끗맡추어 만듭니다. 특히 왕의 갑옷은 만든 장인이 직접 입고 시연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잘못 만들면 자기가 죽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왕의 갑옷입니다. 그러니까 갑옷에서 가장 약한 부분은 솔기부분인 것입니다. 갑옷의 약점, 단점,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도 누구나 ‘자기’라는 갑옷을 입고 삽니다. 자기라는 갑옷이 두터울수록 자우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갑옷은 가벼우면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장 약한 부분이 있고 단점이 있으며 문제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약점과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조심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것들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열심히 감추며 살기도 합니다. 이것이 허점이기에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가 나 자신의 무능함으로 비춰질 수도 있고 비난 거리로도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꽁꽁 숨기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솔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합왕의 이야기에서 그가 죽게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우연히 또는 무심코’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톰’인데 완전함, 무결, 성실함의 뜻으로 타암(완전함 completeness, 청렴, 무결, 순결, 성실 integrity)에서 유래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뜻으로 ‘단순, 순진’이란 뜻으로 아무 결정한 목적 없이 행하는 것에 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에서는 무심코 또는 우연히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화살이 빗발치는 전투 속에서 아합왕을 겨냥한 것도 아닌데 무심코, 우연히 날아온 화살이 하필 약한 솔기를 파고들어 맞은 것입니다. 그렇게 죽은 아합왕의 피를 개들이 핥아 먹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갑옷을 든든히 입고 혹시 모를 위험을 피하기 위해 신분을 위장까지 하고 안전하게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무심코, 우연히 우리의 약점과 단점을 파고드는 화살에 언제 맞을지  모릅니다. 대단한 위세를 떨치며 세상을 호령하던 아합왕이지만 그의 마지막은 무심코 손 화살에 별 의미없이 가버렸습니다. 세상은 화살들이 난무하는 전쟁터 같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질병이, 어떤 문제가, 어떤 인간관계가 화살이 되어 우리의 갑옷 솔기를 뚫고 들어올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문제는 무심코, 우연히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심코와 우연히를 주장하시는 주님 안에서 주님의 뜻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순종하는 성도의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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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 절망 앞에선 희망 "김형섭 목사, 성실교회" 미주교회신보2022.07.07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남유다 백성에게 바벨론에 순순히 항복하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남유다의 왕과 신하들과 백성들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야 한다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내 듣지 않음으로 결국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과 집들은 모두 불타고, 수많은 사람은 목숨을 잃습니다. 그렇게 예루살렘이 완전히 황폐해진 후에 모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되는 수난까지 겪게 됩니다.이렇게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는 절망 앞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간이 땅에 쏟아지는 고통을 느끼며 밤이 새도록 웁니다. 그러다가 놀랍게도 새벽녘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다시 소망을 노래하기 시작합니다.“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예레미야애가 3:21~23)“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예레미야애가 3:33) 남유다 모든 사람이 진멸당하지 않고 이미 1차와 2차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가 있는 사람들이 희망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본심이 마음 언약임을 알게 되고 ‘새 언약을 예고’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의 ‘희망 선언’이었습니다.“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예레미야 33: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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