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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술] 소라색과 다홍색 미주교회신보2025.07.08
    ‘소라색’ 유감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명예교수 최태호   춘천에서 아이가 실종되었다가 충주에서 찾았다고 한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아이를 잃었던 부모의 심정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모서리가 쳐진다. 과거에 치매걸린 장모님을 모시고 살 때 4번을 가출(?)하신 적이 있다. 얼마나 속을 태웠는지 당해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 한 번은 추부에서 옥천으로 가는 버스를 타시려고 하는 순간에 만난 적도 있다. 타고 가셨으면 평생 못 만났을 텐데, 다행히 농협 앞에서 4시간을 헤매다가 기적적으로 찾았다. 그날 속이 상했던 것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늦게나마 아이를 찾았다고 하니 눈물이 흐르려고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춘천에서 발송한 재난 문자에 대한 유감을 표하려고 이 글을 쓴다. 먼저 재난 문자를 보자.   이00 양은 긴 머리카락에 키 140cm, 몸무게 35kg 정도에 ……실종 당시 소라색 후드티에 바지를 입고 흰색 부츠를 신었다고 알려졌다. ……잠실 부근에서 작은 소녀를 보셨다면 얼른 인근 경찰에 인계 부탁드린다.   라고 되어 있다. 춘천시에서 발송한 재난문자라고 하는데 아마도 부모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인지 시청 직원이 알아서 대충 문자를 보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색깔에 대한 우리의 정서를 모르고 작성한 것이 아닌가 한다.   ‘소라색’이라고 하면 남자들은 거의 바닷가에 잡은 ‘고동’을 생각할 것이다. 필자의 경우도 커다란 소라를 먼저 생각했으니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여성들은 조금 다르다. 평소에도 소라색이라는 표현을 자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귀 기울여 듣지 않아서 그렇지 백화점에 갔을 때 주변의 여성들이 옷을 구매할 때 소라색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때 소라색이 무슨 색일까 잠깐 생각하고 잊은 적이 있다. ‘소라’색은 우리말이 아니다. 일본어에서 유래한 단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말이라고 알고 사용하는 것 같은데, 한자로 ‘공(空 : 하늘)’을 일본어로 읽으면 ‘소라’가 된다. 그러니까 ‘하늘색’을 소라색이라고 한다. 요즘은 연두색도 소라색이라고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정확하게는 하늘색이라고 해야 한다. 우리말도 아니고 일본에서 유래한 말인데 춘천시에서 발송한 단체 문자에 이러한 표현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묻고 싶다. ‘하늘색 후드티’라고 해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소라색에 관한 예문을 보자.   태호야, 이번에 우리 엄마 생일 선물로 소라색 원피스 하나 살까? 하늘색이면 하늘색이지 소라색이 뭐니?   와 같이 쓸 수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소라색이라는 표현은 되도록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예전에 ‘살색’이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다문화사회가 되면서부터 살색이라는 개념은 사라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색깔에 대한 관념이 희박한 것이 사실이다.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신호등도 푸르다고 한다. 지금은 ‘푸른 신호등’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없어졌지만 과거엔 엄청나게 인기가 많았던 방송이다. 이제는 색깔을 정확하게 구별해서 표현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 한 번 설명한 적이 있어서 간단하게 ‘다홍색’에 관한 얘기를 하고 마무리하자. 다홍색도 원래는 ‘대홍(大紅)’색이다. 사전에는 “주황색에 가까운 밝은 빨강”이라고 되어 있지만,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에서 부르는 정식 명칭은 ‘밝은 빨강’이다.(위키백과 참조) 중국인들이 그들의 발음으로 ‘따훙(大紅)’이라고 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우리말이 된 것이다. 이 또한 ‘밝은 빨강’이라 하는 것이 좋다.   걱정이 하나 생겼다. 정훈 시인의 <동백>이라는 시에 보면 “백설이 눈부신 / 하늘 한 모서리 // 다홍으로 / 불이 붙는다”라는 구절을 ‘밝은 빨강으로 불이 붙는다’라고 하면 시의 맛이 살아날까 궁금하다. 오호 애재라! 우리말이 갈수록 어려워지나 보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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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 목사의 인격(박종길 : 설교학회장) 미주교회신보2025.07.08
    목사의 인격과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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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술] '데'와 '대'의 차이 미주교회신보2025.07.08
    ☆헷갈리는 우리말☆♤'-데'와 '-대'의 차이1. -데경험을 말할 때 씁니다. 과거에 알게 된 사실을 현재에 말할 때 쓰지요. 직설적인 표현으로 말함을 나타내는 종결어미입니다.예)태호가 아주 말을 잘하데.  여주는 옛날처럼 하나도 변하지 않았데.  삼식인 딸이 둘이데.※'-데'는 말하는 사람이 직접 경험한 사실을 나중에 보고하듯이 말할 때 씁니다.2. -대 '~다고 해'의 줄임말예)태호는 아주 똑똑하대.  삼룡이도 오겠대?'어떤 사실을 주어진 것으로 치고 그 사실에 대한 의문을 나타내는 종결어미. 놀람, 못마땅함의 뜻도 들어 있어요. 예)태호는 어쩌면 저리 잘생겼대?   왜 이렇게 일이 많대?   경칩이 지났는데 왜 이렇게 춥대?(EK Book <헷갈리는 우리말> 참조)❤️최태호의 한국어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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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 시련 미주교회신보2025.07.07
    박종길 목사님 자료입니다. 내용이 좋아서 pdf 파일로 공유합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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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술] '-는 데'와 '-는데' 미주교회신보2025.07.04
    ‘~는 데’와 ‘~는데’의 차이미주대한신학대학교기독교 교육과 한국어전공교수 최태호   요즘은 카카오톡 ♡최태호의 한국어교실♡에서 띄어쓰기를 보내고 있다. “단어는 띄어 쓴다.”고 하면서 각 단어별로 띄어 쓸 것을 권장하고 있는데, 예전에 비해 질문이 많이 들어 온다.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만큼 많은 독자들이 한국어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니 필자의 입장에서는 질문이 많을수록 신이 난다. 요즘 들어 온 질문 중에 많은 것으로는 ‘같이’의 띄어쓰기와 ‘~는 데’와 ‘~는데’의 구별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질문은 필자도 힘들 때가 있다. “태호는 무쇠 같은 사나이야.”라고 할 때는 띄어 쓰고, “새벽같이 출발해.”라고 할 때는 붙여 쓰는 이유가 앞에 있는 것은 ‘같다’라는 형용사의 활용형이고, 뒤에 있는 것은 조사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의존명사 ‘데’와 어미 ‘~는데’에 관해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의존명사로 쓰인 ‘데’의 경우를 살펴 보기로 하자. 보통은 ‘임의의 장소를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예문으로는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 태호가 사는 데는 여기서 얼마나 멀까? 가까운 무당보다는 먼 데 무당이 용하다.   등에서 보는 바와 같다. 특정한 곳이 아닌 임의의 장소를 나타낼 때 쓴다. 상황에 따라 ‘어떤 특정한 경우를 나타낼 때’도 ‘데’를 쓴다. 예를 들면 “머리 아픈 데에 잘 듣는 약이 뭐지?”라고 할 때가 이러한 경우를 말한다. 아울러 ‘임의의 대상을 나타낼 때’도 쓸 수 있다. “태호는 정확한 것으로 말하자면 어디 비길 데가 없는 사람이야.”라고 할 때가 바로 이러한 경우를 말한다. 이럴 때는 항상 띄어 써야 한다. 왜냐하면 모두 의존명사이기 때문이다.   한편 ‘~는데’는 “동사나 ‘있다’, ‘없다’의 어간 또는 선어말어미 ‘-으시’, ‘-었’, ‘-겠’의 뒤에 붙어, 뒤 절의 말을 끌어내기 위하여 관련될 만한 사실을 먼저 제시함을 나타내는 말”, “동사나 ‘있다’, ‘없다’의 어간 또는 선어말어미 ‘-으시’, ‘-었’, ‘-겠’의 뒤에 붙어, 뒤 절에서 일어나는 행동의 원인이나 이유 등을 제시함을 나타내는 말”로 서술어의 ‘어미’에 해당한다. 이렇게 어간이나 어미라는 말이 나오면 독자들은 무슨 말인가 할 수도 있어 잠시 어간과 어미에 대해 조금만 설명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어간은 동사나 형용사, 서술격조사 등 활용어의 활용에서 변하지 않는 줄기(語幹) 부분을 말한다. ‘먹다, 먹어, 먹지, 먹어서’ 등과 같은 말에서 변하지 않는 부분인 ‘먹’이 어간에 해당한다. 어미(語尾)는 어간에 붙어 그 쓰임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되는 부분으로 ‘~다, ~어, ~지, ~어서’ 등에 해당하는 부분을 말한다. ‘~는데’가 어미로 사용될 때는 반드시 붙여 써야 하며 예문은 다음과 같다.   태호가 운동을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너는 도대체 왜 그러는데? 태호가 밥을 먹는데 시간이 없어 남기고 갔어.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설명을 들으면서 보면 다 쉬운 것 같으나 받아쓰기를 해 보면 ‘~는 데’와 ‘~는데’를 헷갈리는 경우가 엄청나게 많다. 쉽게 생각해서 ‘어떤 장소를 나타내거나, 일이나 것이라는 뜻으로 쓸 때, 경우를 나타낼 때’ 등을 이를 때는 의존명사이니 띄어 쓰는 것이 맞고, ‘과거의 경험을 현재에 옮겨 와서 말하는 장면을 나타낼 때’는 ‘어미’로 쓰인 것이니 붙여 써야 한다. 길게 설명하기는 했지만 우리말 띄어쓰기가 참으로 복잡한 것은 맞는 말이다. 세월이 흐르면 바뀔 수 있지만 오늘날에는 오늘에 맞는 문법을 사용하는 것도 교양인의 할 일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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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콩글리시 이야기 미주교회신보2025.07.02
    https://chnewsusa.com/data/image/20250207/2039381645_OmBI5Mtu_c075d1dff5162901a9046202e8af9f97e2d5fc72.jpg‘포일’과 ‘콩글리시(Konglish)’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명예교수 최태호   아침이면 일어나서 신문을 펼쳐 보던 것이 옛일이 되었다. 조간 신문을 보면서-희한하게 신문은 읽는다고 하지 않고 본다고 표현한다- 화장실에 가서 읽던 버릇이 있었는데, 요즘은 전화기를 들고 가서 뉴스를 훑어보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예전에 ‘도로 위 수상한 봉고차..그걸 알아챈 남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다. 내용은 “1차선에 화물차 한 대가 가드레일을 계속 박으면서 가고 있는 것을 뒤에 따라가던 운전자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을 직감하고, 119에 신고하고 차를 억지로 세워서 기절한 운전자를 구했다.”는 것이다. 감동적인 기사가 아닐 수 없다. 처음에는 봉고차라는 것을 보고 승합차인 줄 알았다. 과거에 봉고라는 트럭에 지붕(?)을 얹어 승합차를 만들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우리는 항상 승합차를 부를 때 ‘봉고차’라고 하였다. 다른 이름의 승합차도 많은데 이 모든 차량을 부를 때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봉고차라고 불렀고, 이런 것을 일러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같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이 엄청나게 많다. 가장 많이 틀리게 사용하는 것이 ‘바바리(버버리) 코트’일 것이다. 흔히 ‘바바리 맨’으로로 잘 알려진 이 코트는 영국의 옷 만드는 회사 이름에서 유래했다. 전시(戰時)에 비는 오고 총은 쏴야 하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트랜치 코트’를 만드는 버버리라는 회사에 의뢰하여 전쟁통에 입었던 것이 유행하여 지금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바바리 코트’가 아니고 ‘트렌치 코트’라고 해야 한다. 위의 뉴스에 쓰인 봉고차는 화물차의 종류를 말한 것이기 때문에 바르게 쓰인 것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승합차라는 의미로 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처음 만든 것이 모든 것을 대표하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우리말에는 이와 같은 것이 많이 있으니 몇 가지 예를 더 들어보기로 하자. 운전 중에 도로가 막히면 ‘크락숀’을 울리곤 한다. 경적이라고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락숀이라고 한다. 이것도 ‘클랙슨’이라고 발음해야 하는데, 오랜 세월 이상하게 발음하던 것이 굳어서 지금 모두 틀리게 발음하는 것 중의 하나다. ‘클랙슨’이라는 회사는 경적음을 내는 기계를 만든 회사의 이름일 뿐이다. 자동차에서 내는 경적음을 영어로 한다면 ‘혼(horn : 뿔, 뿔피리)’이라고 하든지 ‘카혼(Car horn)’이라고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사의 이름을 대신해서 쓰고 있으니 외국인들이 들으면 어리둥절할 것이다.   이런 말들을 우리는 콩글리시(Konglish)라고 한다. 아주 대표적인 것이 ‘파이팅(Fighting ‘싸우는’ 이라는 형용사로 쓰인 것)’이다. 이것도 요즘은 ‘화이팅, 홧팅’ 등 다양하게 쓰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영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닌 것이다. 지금은 역수출돼서 미국에서도 이 단어를 쓰고 있다는 농담도 들었다. 한글맞춤법 통일안에서 ‘F’는 ‘ㅍ’으로 쓰기로 하였다. 그러므로 굳이 쓴다면 ‘파이팅’이라고 써야 한다, 마찬가지로 ‘포일(Foil)’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 쓰고 있다. ‘쿠킹 호일’이라고 알려져 있고, ‘포일’이라고 하면 오히려 무엇인지 모른다. 음식을 싸는 포장지 혹은 은박지로 알고 있는 바로 그것을 말한다. 원문으로 하자면 ‘알루미늄 포일’이라고 써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호일’이라고 하니, 필자가 ‘포일’이라고 하면 오히려 민망하기 짝이 없다. 핀잔받을 일이 아닌데, 이상한 눈으로 본다. 한국어학과 교수가 하는 말이니 맞는 것이기는 할 텐데 뭔가 어색하다는 눈치다. 분리수거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반드시 ‘분류배출’이라고 한다. 쓰레기를 종류별로 분류하여 밖으로 내놓는 것(배출)이기 때문에 남들이 뭐라 하든 한결같이 분류배출을 외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콩글리시는 서서히 바른 말로 고쳐야 한다. 바바리 맨도 트랜치 코트 맨(?)으로 바꿔서 불러야 한다. 변하지 않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바른 말로 옳게 표현하는 것은 스스로 교양인임을 나타내는 방법이다. 언어는 마음의 거울임을 잊지 말고 아름답고 바른 말을 하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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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술] 띄어쓰기와 표준어 미주교회신보2025.07.02
    ‘띄어쓰기’와 ‘표준어’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교수 최태호   오늘은 상당히 귀한 자료를 얻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띄어쓰기를 적용한 문법책이다. 이 책이 나오지 전에는 한문을 기본으로 사용하던 터라 한글도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다. 흔히 한국어 띄어쓰기는 호머 헐버트(1863 ~1949)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다. 실제로 대중화에 노력하고 성공한 사람은 헐버트가 맞다. 독립신문(1896년 4월 7일 창간과 더불어 띄어쓰기 적용)에 띄어쓰기를 적용할 것을 적극 권장하였고, 편집에도 참여하였다. 그러므로 한국어 띄어쓰기를 처음 대중화하여 문법적으로 적용한 것은 헐버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헐버트보다 19년 앞서 한국어에 띄어쓰기를 적용한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존 로스(John Ross, 중국이름 나요한, 1842 ~ 1915)이다.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최초로 한국어로 성경을 번역한 사람이다. 그는 그의 책 <조선어 첫걸음 COREAN PRIMER, 1877>에서 띄어쓰기를 처음 시도하였다. 그는 한국에서 온 무역상들과 만나면서 신약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기로 마음먹고, 1887년 <신약전서>를 완성하여 한국에 보냈다. 존 로스는 1874년 가을에 고려문(중국 소재 고려인 집단거주지)을 방문하면서 한국인의 모습을 처음 보게 되었고, 한국을 선교지로 생각하게 된다. 그의 활동으로는 성서 한글화 작업, 서간도를 비롯한 한인촌에 복음전도 등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한반도 이남 등에도 영향력을 끼쳤다. 존 로스가 성서를 한글로 번역하였던 당시 “한자는 진서로 일컬어지며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고 한글은 언문이라 불리며 천시되었으며, 한글은 한자의 보조 표기 수단 정도로 인식”되었던 시기였다. 중요한 것은 한국어의 띄어쓰기를 적용하여 한국어의 현대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지만, 그의 업적이 드러난 것은 요즘의 일이다. 그 이유는 그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사람이 평안도 지방 출신이었던 탓으로 표준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평안도 사투리로 한국어 공부책을 발행한 것이다. 예를 들면 로버트 할리라는 연예인이 경상도 방언을 유창하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다. 참고로 그의 <조선어 첫걸음>에 나타난 문장을 몇 개 보기로 하자.   내 문에 나가갓슴메 ne moone naghaghassumme I door want to pass(=travel).   어디 가갓슴마 udi gaghassumma Whither journey!   등과 같다. 온통 사투리뿐이라 현대인은 무슨 말인지 모를 수도 있다. 실제로 그의 <조선어 첫걸음>에는 남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많다. 예를 들면 “너는 챠타구 나는 말타구 갑세.”, “사자는 챠뒤여 얼그시.”, “쇼ㅣ쇼한 물건는 챠 안에 두시.” 등이다. 현대 표준어로 한다면 “너는 차 타고 나는 말 타고 갑시다.”, “상자는 차 뒤에 둡시다.”, “작은 물건은 차 안에 두시오.”라고 써야 한다. <조선어 첫걸음>을 손에 쥐고 참으로 가슴이 뛰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어 교본>을 얻었으니 감개무량함을 이루 표현할 수 없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책의 가치에 비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당시에는 표준어의 개념도 없었으니 평안도 사투리로 번역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으나 항상 어느 시대나 통용되는 규칙이 있다. 신라시대는 경주방언이 표준어였고, 고려시대는 개성 방언이 표준어였으며, 조선시대에는 한양말이 표준어라고 봐야 한다. 임금이 사는 곳의 언어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존 로스가 번역한 성서가 나중에는 호칭의 문제나 표기의 문제 등으로 다시 번역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러한 필요성 때문에 1887년 2월 7일 서울에서 한국어 성서번역위원회(Committee for Translating the Bible into the Korean Language)를 조직하였다. 학문적 가치를 높이 인정받아야 마땅하지만 평안도 방언을 배운 까닭에 후대에 크게 부각되지 못한 것이 자못 안타깝다. 띄어쓰기를 처음 적용한 것에 대해서는 수 만번 박수를 보내도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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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최태호 박사] 한국어 교실 미주교회신보2025.06.14
    [최태호 박사 / 명예교수]☆토요일엔 한자 놀이☆曲學阿世곡학아세굽을    곡,  배울    학아첨할 아, 세상     세♤학문을 왜곡하고 세상에 아부하다.♧바르지 못한 학문으로 세상의 인기에 영합하려 함사기 유림열전 <원고생>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원문에:公孫子, 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라고 나타나 있습니다. 일부 인용하면무제는 즉위 초기에 모든 유생들이 원고생을 헐뜯으면서 "원고생은 늙었다" 고 말하니 파면되어 돌아갔다. 이때 그의 나이는 이미 구십여 세였다. (무제가) 원고생을 불러들였을 때, -중략- (공손홍이) 곁눈질로 원고생을 바라보자 원고생이 말했다. "공손 선생. 말로써 바른 학문에 힘써야 하며, 세상에 아첨(영합)함으로써 학문을 굽히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라고 했어요. 법불아귀(法不阿貴: 법은 귀함에 아부하지 않는다.)라는 말과 비슷해요.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해야 하고, 학문하는 사람이 세상에 아첨하면 미래가 없습니다.오호, 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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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미주 대한신학대학 출신 김 복임 박사, 그림과 서예로 세계를 빛내다 미주교회신보2023.03.26
     미주 대한신학대학 출신인 김 복임 박사가 그림과 서예로 세계를 빛내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세계 각지에서 전시되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김 복임 박사는 대한민국 명박 출신으로, 미주 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후, 예술을 전공하며 미술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예술적 업적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국제 예술 전시회에서도 그의 작품이 선보여지고 있다. 김 복임 박사는 그림과 서예를 통해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추구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다양한 주제와 표현 기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서예 작품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글씨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김 복임 박사는 그의 예술적 업적과 함께 교육적인 면모도 가지고 있다. 그는 미주 대학교에서 예술과 교육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다수의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미주 대한신학대학 출신인 김 복임 박사의 작품은 예술적인 면모와 함께 교육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어, 많은 이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세계를 빛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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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출생률’과 ‘난임’ 미주교회신보2023.03.02
    필자는 베이비 부머라고 하는 세대의 중앙에 태어났다. 그래서 학교에 다니면서 늘 들었던 말이 ‘산아제한(産兒制限)’이라는 용어였다. 지나치게 많은 아이를 낳아서 나라 살림이 어려우니 조금만 낳자는 말이다. 그래서 나온 표어가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고, 어느 시절부터인가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잖다.”라는 말로 바뀌었다. 그래서 둘 이상 낳으면 야만인 취급을 받았고, 셋째 아이는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그 당시 이러한 표어를 만들고 그렇게 교육하도록 했던 사람들은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었겠지만, 우리나라의 미래를 망가뜨린 것만은 확실하다. 지하에서 그들은 뭐라고 변명할까 궁금하다. 예비군 훈련 갔다가 정관 수술하면 면제해 주기도 하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둘만 낳기를 권장하다가 하나만 낳도록 유도했는데, 결과는 지금처럼 암담하기만 하다. 며칠 전에 나온 뉴스는 아주 화가 많이 날 정도로 답답했다. 뉴스의 제목은 ‘280조를 쏟아 부었는데…작년 출산율 역대 최저 0.78명’이다. OECD회원국 중 꼴찌이고, 평균의 절반에 못 미친다는 것이 뉴스의 골자였다. 뉴스를 듣고 무지하게 화가 난다. 16년 간 약 280조를 저출산 대응 예산으로 쏟아부었다는 말과, 출생아 수는 20년 전의 반 토막 수준인 25만 명 수준으로 떨어졌는 말이 뭔가 석연치 않다. 280조를 아이 낳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주고, 낳은 아이는 나라에서 키워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쓸데없는 곳에 돈만 쏟아붓고 말았다는 말이다. ‘난임’이라는 말의 의미는 ‘1년 간(여성의 나이 만 35세 이상은 6개월) 피임을 하지 않고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가졌는데도 임신이 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과거에는 불임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했는데. 불임(不姙)과는 차이가 있다. 불임은 글자 그대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불가능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난임이란 임신하기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임신할 수는 있지만 쉽지 않은 상태다. 듣자니 요즘 정부에서는 난임 시술비를 2회까지 지원한다고 한다. 도대체 2회까지만 지원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묻고 싶다. 아이를 낳기를 원하면 끝까지 지원해 주어야지 무슨 근거로 2회만 지원하고 마는가? 280조 원이면 난임 부부에게 무한정 지원하고 남는다. 뿐만 아니라 아이 낳은 가정에 1억씩 지원해도 된다. 280조를 어디에 썼는지 꼬치꼬치 캐묻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다. 연구에 의하면 난임가정은 70~80%가 임신에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아이를 낳으면 지방정부에서 키워주어야 한다. 아이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다. 미래에 가장 먼저 인구 소멸할 나라 중 첫 번째가 우리나라라고 한다. 그러니 불임이라고 판단한 경우가 아니라면 끝까지 지원해 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연구비 아무리 지원해도 젊은 부부가 학원비 부담되고 우윳값 부담스러워하면 이미 아이 낳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지방정부나 중앙에서 지원해 주면 아이를 낳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난 해 필자가 예체능 학원비를 지원해 주자는 주장을 했다가 선심성이라고 야단맞은 적이 있다. 나랏돈이라고 제 마음대로 쓰면 되느냐고 핀잔을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학원비가 얼마나 문제가 되면 국제적으로 뉴스거리가 되었겠는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아이를 낳기를 거부하는 부부도 있고, 낳기를 원하지만 생리적인 문제로 어려운 가정도 있다. 이러한 것들 중에는 경제적인 원인도 있을 수 있다. 아마도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예체능의 경우는 학교에서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도 아니니 포퓰리즘이라 논쟁하기 이전에 아이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280조 원을 차라리 이런 곳에 쓰라는 말이다. 다문화가정의 각종 문제는 이민청을 만들어서 해결해야 한다. 이미 단군의 자손이니 순수혈통주의니 하는 주장하기에는 늦었다. 결혼이주여성이 200만 명을 넘고 있는데, 무슨 순수혈통을 논할 수 있는가? 임신한 사람은 범죄로 인한 경우가 아니면 모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아이를 낳으면 정부가 키워주면 출생률은 저절로 높아질 것이다. 다른 것은 다 제외하고 280조를 순수하게 아이 낳은 가정, 혹은 낳기를 원하는 가정에만 제공하면 출생률은 당장 높아질 것이다. 오늘은 필자가 흥분해서 난임에 관한 이야기만 했는데, 마무리로 한국어 공부 하나만 해야겠다. 흔히 소파(搔爬) 수술(手術)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그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말로 하면 ‘긁어냄술’이라고 한다. 소파(搔爬)가 ‘긁어내다’라는 뜻이다. 잘못된 임신의 경우 태아를 긁어내는 수술을 이렇게 말하는데, 소파의 뜻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걸로 마무리한다. [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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